♉ 예를 들어, “어릴 적에 할아버지에게 무척 귀여움을 받았다”, “그 선생님께 무척 귀여움을 받았다”라고 할 때, 구체적으로는 어떤 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?
일본에서는 연인이 아닌 이들 사이의 포옹이나 키스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, ‘귀여워하다’라는 행위의 구체적인 ‘그림’을 보편적인 이미지로 떠올리기는 어려운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. 함께 게임을 했다든지, 정성껏 가르쳐주었다든지, 여러 번 식사에 초대받았다든지, 그런 장면들의 축적이 ‘귀여움을 받았다’라는 인상으로 이어지는지도 모릅니다.
이 시기, 황소자리 사람들은 ‘귀여워하다’, ‘귀여움을 받다’와 같은 장면에 서게 되는 듯합니다. 그때 무엇을 하면 ‘귀여워한’ 것이 되고, 무엇을 해주면 ‘귀여움을 받았다’라고 느낄 수 있는가, 그 자체를 깊이 생각하는 것도 이 시기의 하나의 주제가 됩니다.
어떠한 돌봄이라도 반드시 잘 전달되는 것은 아닙니다. ‘강한 치료법’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다고 하더라도, 나중에 감사받을지, 원망받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. 길에 쓰러져 있던 작은 동물을 보살펴 주었는데, 건강을 되찾자마자 산으로 달아나 버렸을 때, 그 모습을 배웅하며 깊은 만족을 느낄 수 있다면, 그것은 진정한 애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. 그러나 한편으로는 약간의 쓸쓸함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. 그러한 쓸쓸함을 견뎌내는 힘 또한 사랑하는 힘일지도 모릅니다.
한편, 만약 돌봄의 마음이 잘 전달되어, 그것에 응답을 받게 된다면, 그곳에는 큰 사랑의 기쁨이 생겨납니다. 이번 주는 그러한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됩니다.